FX5 2020-11-02
"지잉~" 지난 12일 중국 남부에 위치한 대도시 선전(深圳)의 시민 5만명은 동일한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인민은행이 시범 운용하는 디지털 위안 200위안(약 3만4천원)어치를 무료로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문자메시지를 받은 이들은 식당, 상점에서 이 돈을 사용할 수 있었다.
중국이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CBDC)를 발행하기 위한 막바지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시민 5만명을 대상으로 한 시범 운용을 최근 마쳤고, 디지털 위안을 법정화폐로 취급하는 내용의 은행법 개정안도 내놨다.
인민은행과 광둥성 선전시는 지난 12~18일 디지털 위안을 실제 결제에 사용했다. 선전시는 사전 신청한 뤄후구 시민 191만여명 중 무작위 5만명을 추첨해 디지털 위안을 지급했다. 당첨자가 문자메시지의 링크를 누르면, 지갑 애플리케이션(아래 앱)이 설치됐고 여기엔 200위안이 들어 있었다. 총 지급액은 1000만위안(약 17억원)이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인민은행과 선전시는 안내문구에서 디지털 위안 지갑 앱을 명절에 주고받는 붉은색 돈 봉투 '홍바오(紅包)'에 비유했다. 중국 언론은 200위안의 '행운'을 거머쥔 당첨자들의 결제 경험을 연이어 보도했다.
방송사 후난두스는 디지털 위안으로 결제하기 위해 뤄후구의 한 샤브샤브 식당을 찾은 한 남성의 사례를 전했다. 이 남성은 "내가 당첨 될 줄 몰랐다. 친구가 당첨이 안 됐다기에 확인해 봤는데, 나는 당첨이 됐다는 메시지가 떴다. 그래서 특별히 돈을 쓰러 나왔다. (디지털 위안을) 시험해 보려 한다"고 말했다.
디지털 위안 시범 운용 마지막 날인 18일 밤, 남은 금액을 모두 사용하려는 시민들의 모습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신화넷에 따르면 한 시민은 종료 시점을 3시간 앞둔 오후 9시, 주유소에서 200위안을 한꺼번에 결제했다. 그는 "QR코드를 통한 디지털 위안 결제가 위챗페이나 알리페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차이가 있다면 인터넷 환경의 영향을 덜 받고, 은행 카드는 (연동해) 사용할 수 없으며, 속도가 비교적 빠르다는 점 정도"라고 말했다.
인터넷이 없는 오프라인 환경에서도 결제와 송금이 가능하다는 점은 디지털 위안이 위챗페이, 알리페이 등 민간 모바일 결제 수단과 갖는 큰 차이 가운데 하나다. 지난 4월 온라인에 처음 유출된 디지털 위안 지갑 이미지 가운데, QR코드 결제, 송금 메뉴와 더불어 '부딪히기(碰一碰)' 아이콘이 주목받았다.
일각에선 이 기능이 휴대폰과 휴대폰 간 근거리무선통신(NFC)을 활용해, 오프라인 환경에서도 결제와 송금이 되는 기능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선전 시민들이 다운받은 디지털 위안 앱에도 이 기능이 있다.
시범 운용 다음날인 19일 선전시 발표에 따르면, 7일간 디지털 위안으로 6만2788건, 876만위안의 거래가 이뤄졌다. 총 발행된 디지털 위안 1000만위안 가운데 90%에 가까운 금액이 모두 사용된 것이다.
시민들은 선전시 뤄후구 내 3389곳의 상점에서 바코드, QR코드, NFC 등을 통해 디지털 위안을 사용했다. 경제관찰보에 따르면 상점뿐 아니라 지하철 카드 충전에도 디지털 위안을 쓸 수 있었다. 한 시민은 200위안을 편의점과 서점, 마트 등에서 고루 활용했다며 "디지털 위안으로 결제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고 말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인민은행은 디지털 위안 결제 시스템 구축을 위해 농업은행, 공상은행, 중국은행, 건설은행 등 주요 상업은행들과 긴밀하게 협력했다. 상업은행들이 기존에 제공하던 결제 시스템을 디지털 위안에 맞게 변형해, 가맹점들이 활용하도록 지원했다는 설명이다. 덕분에 가맹점들은 별도의 비용 부담 없이 디지털 위안을 결제 수단 중 하나로 추가할 수 있었다.
이번 시범 운용에 참가한 대형 슈퍼마켓 체인 뱅가드(华润万家) 관계자는 신화넷에 "추가 비용 지출 없이 선전시 뤄후구 내 26개 지점에서 입출납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7일 동안 26개 지점에서 결제된 디지털 위안은 약 224만위안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상업은행들은 결제 시스템 구축뿐 아니라 가맹점 직원들의 '적응 훈련' 또한 지원했다. 상점들은 약 두달 전부터 상업은행 직원들이 직접 파견 나와 디지털 위안 입출납 기기 사용법을 교육했다고 전했다.
앞서 판이페이 인민은행 부행장은 기고에서 "디지털 위안화 유통 과정에서 기술 인프라 구축과 시스템 관리에 대한 요구 수준이 비교적 높다는 점을 고려해, 상업은행들과 협력 중"이라며, "이들과 책임과 권한을 명확히 나누는 가운데, 대중에게 디지털 위안 서비스를 함께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디지털 위안이 상업은행들의 결제 시스템을 거쳐 소비자들 손에 최종 전달되더라도, 그 전반적인 운영과 관리는 인민은행이 맡을 것으로 보인다.
상해증권보에 따르면 무장춘(穆长春) 인민은행 디지털화폐연구소장은 지난 25일 상하이에서 열린 제2회 와이탄금융포럼에 참석해 디지털 위안화가 인민은행의 중앙집중형 관리 하에 운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 소장은 "이미 금융 기초 인프라로 자리잡은 모바일 결제에 어떠한 위험이라도 발생하면, 국민들의 생활에 막대한 영향력을 줄 수 있다"면서, "디지털 위안화를 중앙화 방식으로 관리하면 가상자산(암호화폐) 및 글로벌 스테이블코인에 의한 화폐 주권 침식을 막고, 자금세탁 및 테러자금조달 등 범죄행위를 막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무 소장은 초과 발행을 방지하기 위해, 인민은행이 디지털 위안 발행 한도를 직접 관리하고 100%의 준비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디지털 위안 유통량은 행정적 강제가 아닌, 시장의 수요에 따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리후이(李礼辉) 전 중국은행 총재도 지난 27일 상하이에서 열린 제6차 블록체인 글로벌 서밋에서 디지털 위안이 중앙집중형 관리 및 간접 발행 방식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은행 북경사무소는 지난 15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일부에서는 이번 시범 사용에서 특별한 문제나 보완 과제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중국 정부가 언제라도 디지털 위안을 공식 발행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디지털 위안에 지폐와 동전 등 법정화폐와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는 내용의 중화인민공화국 중국인민은행법(은행법) 개정안이 23일 공개됐다. 은행법 개정안은 제22조를 통해, 인민은행이 아닌 다른 어떤 민간 기관이나 개인도 위안화의 유통을 대체할 토큰을 발행하거나 판매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개정안 제65조엔 불법으로 토큰 또는 디지털 화폐를 발행해 유통할 경우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명시됐다.
제65조(토큰 및 디지털 화폐 발행 및 유통에 대한 책임) 토큰 또는 디지털 화폐를 발행 및 제작해 시장에서 인민폐(위안화) 유통을 대체하려는 행위에 대해 중국인민은행은 위법행위 중단을 명하고 불법 발행 및 유통된 토큰 및 디지털 화폐를 소각할 수 있다. 또 위법행위를 통한 소득을 몰수하고, 그 다섯배 이하의 벌금을 매길 수 있다. 그 금액을 특정할 수 없는 경우에는 10만위안 이상 50만위안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상황이 엄중할 경우 62조제2항 규정에 따라 처벌 가능하다.